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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인터뷰]'베트남'에서 만난 유상철 "열정 전도사 되고파"   15-11-18
대학연맹   8,41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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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인터뷰]'베트남'에서 만난 유상철 "열정 전도사 되고파"
2015-11-16 00:11
유상철 감독
유상철 대학선발팀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. 빈즈엉(베트남)=이 건 기자 bbadagun@sportschosun.com


유상철 울산대 감독(44)은 11월 4일 베트남으로 향했다. 다른 감독들은 모두 U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하던 때였다. 유 감독에게도 왕중왕전은 중요했다. 우승을 하고 싶었다. 하지만 새로운 제의가 들어왔다. 대학축구연맹은 유 감독에게 대학선발팀을 이끌고 베트남에 가달라고 부탁했다. 대학선발팀은 베트남 빈즈엉에서 열리는 2015년 BTV컵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해야 했다. 


유 감독은 고심했다. 결론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. 대학연맹의 요청을 받아들였다. 10월 27일 대학최고의 선수들을 소집했다. 천안에서 합숙훈련도 진행했다. 그 사이 울산대는 30일 열린 왕중왕전 1회전에서 용인대에 0대4로 지며 탈락했다. 그래도 유 감독은 대학선발팀 훈련에 매진했다. 그리고 베트남으로 날아갔다. 중요한 시기에 의외의 결론을 내린 유 감독의 속내가 궁금했다. 베트남 빈즈엉으로 날아가 유 감독을 만났다. 


▶열정


유 감독은 '열정'을 전달하기 위해 베트남행을 선택했다. 현역 선수 시절 유 감독은 화려했다. 청소년시절부터 대표팀에서 뛰었다. 1994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에 데뷔했다.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K리그 우승 2회, J리그 우승 2회를 경험했다. 골키퍼 빼고는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맨이었다. 2002년 한-일월드컵에서는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. 국제축구연맹(FIFA)이 선정한 월드컵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렸다. 124번의 A매치에 나서 18골을 집어넣었다.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'열정'이었다. 유 감독은 "축구에 대한 열정. 그 단어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. 축구를 잘하고픈 욕심은 물론이고 성실함, 인내, 희생 등이 다 함축됐다. 지도자가 된 뒤 열정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었다"고 말했다. 


시작은 쉽지 않았다. 첫 선택은 춘천기계공고였다. 다들 의아해했다. 다른 스타 동료들은 대부분 프로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. 유 감독은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. 유소년 축구를 알고 싶었다. 2년 정도 아이들과 뒹굴었다. 2011년 7월 대전 시티즌을 맡았다. 1년 반을 열심히 뛰었다. 2012년 시즌을 끝낸 뒤 지휘봉을 내려놓았다. 2014년 대학 감독으로 돌아왔다. 울산대를 맡았다. 그리고 2년 남짓 지났다. 울산대를 대학의 강호로 업그레이드시켰다. 그 사이 자신을 거쳐간 제자들은 '열정'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겼다. 유 감독은 자신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선수들에게도 '열정'을 전하고 싶었다. 그 기회가 바로 대학선발팀이었다. 


"제의가 왔을 때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. 전국에 있는 대학 선수들을 다 아는 것도 아니었다"고 말한 유 감독은 "그래도 대학의 좋은 선수들을 뽑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. 열정을 경기력으로 표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. 욕심이 생기더라"고 말했다. 


▶환경


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. 선수들에게 '더 좋은 환경'을 제공하고 싶었다. 현재 대학선수들은 대부분 국내 경기만을 소화한다. 국제경기 경험은 극소수의 각급 대표팀 선수들 정도만 한다. 그나마 그 자리도 대학소속보다는 프로소속 선수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. 때문에 BTV컵 출전은 선수들에게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. 실제로 2004년의 경우 대학선발팀은 베트남에서 베트남 A대표팀과 맞붙어 4대3으로 승리한 적이 있다. 이 때 주전 멤버들이 바로 염기훈 권순태(이상 전북) 조용형(스좌장) 최효진(전남)이다 이들은 이때의 국제 경험을 바탕으로 A대표팀급 자원으로 성장했다. 유 감독은 "선수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. 이런 대회를 통해 선수들은 자산을 쌓을 수 있다. 디딤돌의 발판이 되는 그 역할을 내가 하고 싶었다"고 설명했다. 


▶2002년


이 같은 활동의 최종 목표는 '어게인 2002년'이다. 2002년 한-일월드컵 당시 멤버들은 하나둘 그라운드를 떠났다. 이제 많은 이들이 지도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. 다들 2002년 당시 배웠던 것 들을 지도자로서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재분배하고 있다. 유 감독도 마찬가지다. 그리고 그것들이 결실을 맺는날을 기대하고 있다. 


유 감독은 "누가 그러더라. 앞으로 우리가 살아있을 때 다시는 2002년같은 희열을 맛볼 수 없을 것이라고. 내 생각은 다르다. 우리는 다시 그런 영광을 맛볼 수 있다. 그러기 위해서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열정을 전하고 있다"고 말했다. 유 감독은 "2002년도 멤버들이 지도자로서도 경쟁하고 협력하고 싶다. 지도자로서도 많이 외국에 나가서 배우고 경쟁했으면 한다"고 했다. 그러면서 말을 마무리했다. 


"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월드컵에서는 2002년 멤버들이 한 팀에서 일했으면 한다. 그리고 당시의 희열을 다시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." 
빈즈엉(베트남)=이 건 기자 bbadagun@sportschosun.com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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